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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줄거리, 저자소개, 느낀점

by 토기장이제자 2023.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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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줄거리, 저자소개, 느낀 점에 대하여 적어 보고자 한다. 구운몽은 성진이 양소유가 되어 8명의 처. 첩을 거느리고 입신양명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지만, 인생의 허무함은 그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음을 깨닫고 불법에 귀의하여 내세를 준비하고 극락세계에 이르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임을 깨닫는다. 

줄거리

당나라 형산 연화봉의 한 초암에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은 스승의 심부름으로 동정 용궁의 용왕에게 심부름을 간다. 그곳에서 용왕의 환대를 받고 돌아오던 길에 연화봉에서 육관대사에게 심부름을 온 위부인의 8 선녀들과 만나 잠시 놀게 된다. 처소로 돌아와 불법에 정진하려던 성진은 불교에 회의를 느끼고 세속의 욕망을 갈망한다. 그때, 스승 육관대사가 성진을 불러 용궁에서 술을 마신죄, 선녀들과 즐겁게 희롱하며 지낸 죄, 불법을 잊고 부귀영화를 꿈꾼 죄로 지옥으로 보낸다. 위부인의 8 선녀들 역시 지옥으로 와 있었고 성진과 8 선녀는 인간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는 벌을 받게 된다. 양소유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성진은 총명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에 나아가 높은 관직에 오르고, 전쟁에 나가서는 승리하여 돌아오며 2명의 처과 6명의 첩을 거느리고 한평생을 살지만, 나이 들어 유유자적하며 지내던 중 입신양명과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깨닫는다. 이에 양소유와 8 처첩은 모두 머리를 깎고 불교에 귀의하고 육관대사를 만난다. 그런데 육관대사를 만나면서 그동안 양소유로 살았던 삶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후 성진과 8 선녀는 불법을 갈고닦아 극락세계에 이른다. 

저자 소개

원저자 김만중은 조선 선조, 광해군, 인조 때 활약했던 인물로 남한산성 사건의 굴욕으로 자결한 김익겸의 아들이다. 3번의 유배를 다녀온 조선시대 문신이자 소설가로 어려서 형과 어머니를 의지하며 살았다. 유배 중 쓴 한글소설 <사씨남정기>는 숙종이 인현왕후를 쫓아낸 것에 빗대어 쓴 작품으로 이 작품 이후 가정 안에서 첩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를 다룬 가정소설이 많이 쓰였다.  서포가 살았던 시기가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되던 시기였던 만큼 정치적인 혼란이 많이 대두되어 당쟁이 매우 심하였다. 서포의 가계는 모두 서인의 중심적 인물들로 남인과 심하게 대립하였다. 두 번째 귀향 때 쓰인 한글소설 <구운몽>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조신의 꿈'을 기본틀로 스토리를 확장한 소설이다. 우리나라 고전 소설에서 꿈과 환상의 문학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구운몽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문학으로 일시적인 꿈을 그리는 것을 넘어 인간의 삶 전체를 꿈으로 설정한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구운몽은 김만중이 평안도 선천 유배 시절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로하려 쓴 한글 소설로 전해진다. 그는 대사헌, 대제학까지 오르며 영화를 누릴 만큼 누렸으나 말년은 경남 남해의 유배지에서 보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볼 때, 아마도 김만중은 영원히 지속되는 입신양명에서  삶의 허무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느낀 점

지금 읽어도 그 구성이 매우 정교하고 이야기가 재미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판타지 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유배 중에 어머니를 걱정하는 아들의 마음을 통해 김만중은 어머니에게도 인생은 헛된 것이니 아들이 유배 간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구운몽의 '구'는 양소유와 8명의 처. 첩으로 아홉 주인공들을 나타내고, '운'은 구름과 같은 덧없는 인생을 나타내며, '몽'은 환몽구조로 그 형식을 나타내 주고 있다. 당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저서는 모든 인간들이 추구하던 부귀영화가 덧없는 것이요, 진리를 추구하는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 또한 인간은 욕망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다는 것이 당대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다이내믹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지루할 틈이 없고 독자로 하여금 긴장감 있게 집중하도록 한다. 당시 조선시대가 유교국가 였지만, 불교와 도교 역시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책의 내용 중에 섞여있는 유교, 불교, 도교 사상이 읽는 이들도 크게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김만중은 유교도 도교도 아닌 불교에 귀의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책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선비들에게 유교는 무엇이었는지 다시 질문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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