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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가 된 옥탑방 의사> 도서 줄거리, 저자 소개, 느낀점

by 토기장이제자 2023.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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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가 된 옥탑방 의사>를 읽고 느낀 점과 요약 줄거리, 저자 소개에 해애서 이 글을 써 보려고 한다. 

 

 

도서 줄거리

장기려 박사는 대한민국의 슈바이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1911년 평안북도 용천출생으로 기독교를 믿는 가정에서 자라 평생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학비가 가장 싸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직업은 의사라고 생각하고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의사의 길을 걸었다. 이후 평생 스승이 된 백이제 선생과 헌신적인 아내를 만났다. 의학공부를 마친 후에도 가난한 화낮들을 돌보기 위해 평양 기홀병원으로 가서 무료로 환자를 치료해주기도 하는 등 어렵고 힘들지만, 보람 있는 일을 하는데 매진했다. 그러다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둘째 아들만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당시는 금방 만날 줄 알았던 가족들은 평생 떨어져 살게 되었다. 1951년 피난민으로 ㄷ르끓던 부산 영도에서 천막을 치고 무료진료를 시작하였다. 또 부산의 복음병원에서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외국에서 모금해 준 돈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도 환자들의 형편이 어려운 것을 알고 병원비를 받지 않기도 하고 심지어 환자들의 병원비를 내 주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덴마크에서 공부하고 온 채규철이라는 청년을 통해 덴마크의 의료보험제도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1968년에는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모태가 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했고, 1976년 국민훈장 동백장. 2년 뒤 대한적십자 총재 상. 이듬해 '아시아의 노벨상'이라는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사회봉사부분)을 수상하였다. 평생, 고신대 복음병원 옥탑방서 지냈던 장기려 박사는 이후 뇌졸중으로 3년간 투병하다 1995년 12월 25일 서울 백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저자 소개 

강이경 작가는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아동문학 부문에 당선되었다.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가족과 열아홉 살 슈나우저 천둥이와 함께 경기도 작은 산속 마을에 살면서 그림책과 동화, 인물 이야기, 동시들을 쓰고 외국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30대 초반에 장편 소설을 썼다. 그러다 아동문학의 세계를 접하며 동화와 동시를 쓰고 있다. 강이경 작가가 밝힌 동시에 대한 견해를 보자면 동시는 쉽게 읽히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온라인 공간에서 쓰신 글과 다르게 따뜻한 시선으로 쓴 동시에 곡을 붙이고 싶고 하여 강찬영 작곡가가 곡을 붙여 창작 동요를 만들기도 했다. 작품으로는 <정선>, <제인 구달>, <영원한 소년, 화가 장욱진> 등 인물 이야기와 <개와 고양이>, <뺨 맞은 사또>, <우리 엄마 강금순>, <어머니의 자장가>, <착한 어린이 이도영>, <평양 수학여행 이야기>, <폭탄머리 아저씨와 이상한 약국>, <조금 특별한 아이>, <성자가 된 옥탑방 의사> 등 옛날이야기를 쓰고, <마법학>, <여기는 산호초>, <내 꿈은 엄청 커>, <만델라>, <갈릴레오>, <알렉산더 대왕>, <그리스인 조르바>, <대자연 속에서 찾은 멋진 생각들>, <너는 작은 우주야>, <사랑해 너무나 너무나>, <나무> 등 서른 여 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느낀 점

장기려 박사는 환자만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세상을 고치는 의사였다. 장박사가 부산 복음병원의 원장으로 있을 때, 가난하거나 다른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환자들이 그에게 진찰이라도 받아보고 죽겠다며 몰려들었다. 하지만, 치료를 받고 나면 치료비와 약값을 낼 형편이 못 되는 환자들 때문에 자신의 월급에서 대신 갚아주느라 그는 늘 가난했다. 장기려 박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바윗돌처럼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는 의사'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땅 1평 없이 완전한 무소유의 삶을 평생 실천하였다. 무소유로 살았다는 것이 칭송받는 것이라기보다 평생 흔들림 없이 가난한 자를 위해 살겠다는 신념을 실천했다는 것이 칭송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신앙인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가족과 헤어지고, 일평생 혼자 살면서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을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보험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또 의료보험의 모태가 되는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들었다. 또 동양의 슈바이처 박사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그의 별명은 "바보의사"였다. 의사로서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를 내려놓고 일평생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96년 당뇨병으로 86세에 하늘나라로 갈 때까지 작은 예수로, 살아 있는 성자로 한국의 슈바이처로 타인의 모법이 되어 살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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