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열하일기> 줄거리, 저자 소개, 느낀점

by 토기장이제자 2023. 8. 26.
반응형

<열하일기>를 읽고 줄거리, 저자 소개, 느낀 점에 대하여 적어보려고 한다. 열하일기는 조선후기 북학파의 수장이 된 박지원이 8촌 형을 따라 중국 사신단으로 4개월간 열하와 북경을 다녀와서 보고 느낀 점을 적은 기행문이다. 당시 출판이 되기도 전에 필사본이 유출되는 등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인기를 끌었다. 모두가 청나라를 오랑캐의 나라로 업신여길 때 박지원은 그들의 앞선 문물을 배워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노력했다. 

줄거리

연암 박지원은 44세 때 꿈에도 그리던 중국에 가게 되었다. 8촌형 박명원(정조의 고모부)이 1780년 정조 4년에 중국 사신단으로 가면서 박지원을 자제군관으로 임명하여 데려갔다. 중국 황제 건륭제의 70세 생일잔치 만수절을 축하하기 위해 축하사절단으로 황제의 여름 피서지인 열하로 가게 되었다. 고된 여행길에 말 위에서도 틈틈이 기록을 남기며 속기한 내용을 귀국 후 정리해 열하일기를 펴냈다. 중국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글로써 대화를 하는 필담을 나누면서 현장에서 기록한 덕분에 지금까지 200년 전의 청나라 모습을 알 수 있다. 조선으로 돌아와 열하일기를 출판하기 전에 필사본이 유출되는 등 가히 도성 안에 사대부들은 모두 보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베스트셀러'에 등극하였다. 기존의 연행록이 '기승전오랑캐' 로 끝난 것에 반해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당시 청나라의 문화, 종교, 북경 근처 대운하가 있는 도시 통주의 모습과 그곳에서의 무역의 중요성을 느끼고 왔다. 그래서 허생전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일본과 서양의 교역에 조선의 참여를 주장하기도 했다. 또 그곳에서 본 수레와 벽돌제작의 필요성을 말하면서 북학파라 불리는 실학자의 수장이 되기도 했다.  

저자 소개

박지원은 1737년에 태어나 1805년에 타계하였다. 영조 46년에 1차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했다. 하지만, 2차 과거 시험에서는 백지 답안을 내기도 했다. 정조 4년(44세)에 8촌형을 따라 연행사로 북경과 열하를 다녀와서 기행문인 열하일기를 펴냈다. 박지원의 집안은 8촌형이 정조의 고모부로 조선왕가와 연결되었던 로열패밀리 이기도 했다. 열하일기는 청나라에 다녀온 연행 일기로 4개월 간의 기행을 기록하였다. 총 26권 10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후기의 실학자로 소설가이기도 하다. 배청의식이 강하게 작용하던 시기에 홍대용, 박제가 등과 함께 청의 선진문물을 배워 조선의 실생활에 활용해야 한다는 북학파의 수이며 중상주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양반전>, <허생전>, <호질>, <연암집> 등의 저서가 전해지고 있다. 

느낀 점

열하는 온천이 많아 강물이 얼지 않는다고 해서 열하로 불렸다. 박지원은 이 열하를 다녀와서 조선이 길을 넓히고 수레를 사용해 백성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길 바랐다. 벽돌을 사용하여 성을 쌓는 방식을 보고 우리도 적극적으로 벽돌 만드는 법을 배워 사용하길 원했다. (북학파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벽돌로 수원화성이 건축되었다.)  애당초 목적지는 열하가 아니었지만, 황제가 여름별장인 열하로 가 있었기에 사신단들은 황제를 보기 위해 목적지를 바꿔 열하로 향했다. 박지원은 중국의 풍부한 재화와 물건이 어느 한 곳에 몰려있지 않고 여러 지역으로 유통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유통에 대해서도 자기만의 해답을 제시했다. 청나라 사람들과 대화는 통하지 않았지만, 같은 한자를 사용했기에 필답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유쾌하게 지냈다. 열하에 입성하기 하루 전까지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더위와 추위에 시달릴 때, 부상을 당한 마부를 자신의 말에 태우고 자신은 걸어서 갔던 모습을 보면 신분사회인 조선에서 박지원이 보여준 행동을 통해 지식인이 마땅히 지녀야 할 덕목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