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라 조선왕조실록> 도서를 읽고 줄거리 요약, 저자 소개, 느낀 점에 대해서 글을 적어 보려고 한다. 임진왜란 때 4곳의 사고 중 3곳이 불에 타면서 마지막 남은 전주사고 마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전주사고마저 타 버린다면 조선의 500년 역사가 영원히 묻힐 위기였다. 이에 손홍록과 안위는 임진왜란이 끝날 때까지 실록을 피난시키고 지키며 보존해 왔다.
줄거리
1592년 왜군이 조선을 쳐들어 왔다. 일본은 부산 진성을 거쳐 이내 동래성을 무너뜨렸다. 계속 밀고 올라와 신립장군이 지휘하고 있는 충주까지 들어왔다. 조정은 왜군이 계속 밀고 올라오는 조총부대를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충주사고에 불을 지르고 조선의 역사는 끝났다고 비아냥 거렸다. 선조 임금은 피란길에 오르고, 한양을 손쉽게 차지한 왜군은 양식이 많이 나는 전라도를 공격했다. 이에 전라도 관찰사는 전주 사고 관리들에게 서둘러 전주사고 실록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도록 명령했다. 왜냐하면 성주사고, 충주사고, 춘추관에 보관했던 실록은 이미 잿더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 남은 전주 사고는 꼭 지켜내야만 했다. 이에 안의, 손홍록은 집안의 종들을 모아 전주 사고로 달려가 실록을 궤짝과 비단보에 담아 수레, 소, 말, 사람의 어깨에 실어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이를 '이안대'라고 불렀다. 이 안대는 전주사고에서 내장산으로 아산을 거쳐 해주로 해주에서 강화도로 강화도에서 다시 묘향산으로 이동하며 실록을 지켰다. 선조 임금은 해주에서 눈물로 이안대를 맞고 칭찬하며 안의와 손홍록에게 벼슬을 내리려 하였지만, 이들은 사양하며 백성으로서 마땅한 일을 했다고 하였다. 이후 실록은 태백산, 오대산, 춘추관, 마니산, 묘향산에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를 만들었다.
저자 소개
저자 박운규는 지리산이 보이는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서 부산 끄트머리에서 소년기를 보냈다. 지금은 월악산 수안보면 미륵리에서 동화를 쓰고, 고양시 일산의 대안학교인 다산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중앙대학교에서 문예 창작을 공부했다. 오월문학상에 소설이,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중앙대, 건국대에서 문예 창작을 강의했다. 2012년 장편 동화 <주문을 외자, 아르케옵테릭스!>로 한국아동 문학상을 받았고, 열린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어린이에게 역사의 뿌리와 사람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열심히 어린이 책을 쓰고 있다. <나운규의 아리랑>, <안녕, 태극기!>, <고마워, 한글>, <버들붕어 하킴> 청소년 소설 <내 이름엔 별이 있다>, <황금나무>, <천년별곡>이 있다. 작가는 최근 <홍길동 파천황기> 등의 다양한 장르의 책을 펴냈다. <선사 시대의 타임캡슐, 고인돌>, <목민심서 정복기>, <뿔쇠동구리의 꿈>,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이 중 일부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동화 창작이론서인 <태초에 동화가 있었다> 등이 있다. 2016년 도에는 충주에 뿌리를 둔 작가들과 함께 충주를 배경으로 하는 동화작품을 구상하기도 했다.
느낀 점
<지켜라 조선왕조실록>은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실록은 사실 없어질뻔하였고, 지금까지도 현존하게 된 이유는 전쟁 중에도 자신과 집안의 재물을 희생한 두 사람 손홍록과 안위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함을 알게 해 주었다. 임진왜란 당시 손홍록은 56세, 안위는 6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역사서가 없으면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노구를 이끌고 5차례의 이사를 감행하면서 까지 실록을 지켜냈다. 만약, 조선왕조 실록이 그 당시 전주사고의 것마저 불에 태워졌다면 우리는 조선 500년의 역사를 도통 알 길 없어 애태웠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1997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국보 151호 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실록은 단일 왕조로 객관성과 공정성이 이미 인정받았고, 그 보존상태 또한 훌륭하기까지 하다. 풍부한 내용과 임금님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가 임금님의 언행과 국정과정 전반을 기록하고 평가하였다. 이 책을 보면서 손홍록과 안위의 깊은 희생과 백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기에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았던 깊은 마음은 현대 사회에서 돈이 되지 않으면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안위와 손홍록은 시대의 지성인이었기도 하지만, 실록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기 때문에 아무 보상 없이 희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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